그치만 우주가 거짓말이라면 엄마

54430203099 2024. 12. 6. 22:07


지구인들은 얼마나 슬프겠어요

이야기라면 멈추지 않을 자신이 있다

천 일 동안 계속 할 거야
밤에도 아침에도 계속 할 거야

더 많이 자주 밤이 와도
우리를 구했던 것은 언제나 이야기
펼치고 펼치면 달에는 가겠지

어차피 난 맨날 외계인 같았어
그래서 이 시를 멈출 수 없어

뭐가 변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어
왜 처음 겪는 불행도 익숙한 걸까?

터져 나올 것 같은 말이 있었어

엘리노어, 정말로 보고 있어?




달도 가짜라는 소문을 들었어
그저 조명등일 뿐이지만  
그래도 네가 편안한 밤 보내면 좋겠다
도죠 요로시꾸 셰셰

스위치를 끄고 어둠 속으로 사라질 거야
깨지기 쉬운 밤


2444년, 태양이 고장 났다. 수명이 다 된 형광등처럼 미친 듯이 번쩍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2019년 처음으로 관측된 별인 양조성 근처에 대기하던 조시현 박사의 태양계 관측 로봇 파랑새가 태양 가까이 접근하였고 마침내 태양이 거대 기계일 뿐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구의 하루 역시 철저히 조작된 것이다. 사람들은 태양을 미친 기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시간은 망가졌다.




Message You

보고 싶어 엘리노어
이렇게 조용한 지구를 상상해본 적 있어?
인쇄된 글자처럼 쓸쓸해

내가 죽었다는 사실이
내게 너무 늦게 전해지는 건지도 몰라

별이 많다
너무 밝은 건 인공위성이라고
만화책에서 봤어

네가 죽을 때까지 내려다볼게
떠나면서 너는 그렇게 말했지만

어떤 말들은 이제 알 것 같다

너를 상상해, 엘리노어
하얀 옷자락을 펄럭이면서
둥둥 떠다니겠지

가끔 거기 있는 것 같아
네 눈으로 나를 보는 것 같아

너는 미래의 시간에 살고
나는 과거의 빛을 보지

오래 헤어지는 이별을 하는 것 같다


엘리노어, 아직도 보고 있어?



2888년 지구에서 발굴된 일기장으로 2500년대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자는 지구의 거의 마지막 생존자로 보이며, 때문에 기록은 상상으로 밖에 채울 수 없었던 지구의 마지막을 복원하는 일에 매우 귀중한 사료가 되었다.



lecture:

마지막 인간을 상상해봅시다.

그 무렵 지구는 정말로 따뜻했습니다. 누구도 쓸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거겠죠.

인류의 기원은 어류였습니다. 영혼이 헤엄치는 형태로 움직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주는 일종의 거대한 아쿠아리움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여기서는 모든 소리가 반향됩니다. 자신이 던진 질문을 대답으로 듣는 동안, 누군가는 우리를 들여다볼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마지막을 상상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주로 나온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요?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상을 잊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겠습니다. 자, 다 함께 몸을 창가로 돌려봅시다. 저기, 녹아서 흘러내린 지구를 보세요. 꼭 쉼표같지요. 바로 앞에 있는게 물고기자리랍니다. 마치 크게 입을 벌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요?

그러면 얼어붙어 야광 별이 된 조상들을 기리며 잠시 묵념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그런데 브라더, 우주에도 유령이 올 수 있을까?

거짓말이라면, 눈을 두 번 깜박여줘
별들이 미친 듯이 깜박 거린다.

도망칠 수 없는 광경을 생각한다.

바깥을 응시하며

울었을까

지나가는 기차가 돌아오는 것인지 떠나가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있다.

어떤 말은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니?

record: the last one

엘리노어, 보고 있어?





1) 공식적으로 지구 인간은 2500년대 멸종되었다.
2)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던 인간은 자신들이 만든 플라스틱을 먹은 어류ㅡ조상ㅡ를 사정없이 먹어치웠다. 2050년대를 기점으로 인간의 혈관에는 피가 아닌 플라스틱이 흐르기 시작했다.
3) 1969년, 인류가 달에 나일론 깃발을 꽂음으로써 그의 꿈은 현실성을 띠기 시작했다. 이 후 수많은 플라스틱ㅡ흔하고 가볍고 저렴하다ㅡ이 우주 곳곳을 누비고 있다.
4) 미세 플라스틱은 소리 없이 그러나 정확하게 자신들이 원하던 숙주의 몸을 차지하고 인간을 구성하는 핵심 성분이 되었다. 플라스틱은 인공지능조차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다ㅡ인간 그 자신이 되기.




토성의 고리 44

신의 기분을 짐작할 수 있다

헐겁게 묶여 기울어지는 것들
별자리는 누구의 제안입니까

기도란 떼쓰다의 정중한 말이고
그땐 정적도 응답이 되지
우주를 연재하는 건 거대한 무음




2076년, 우주 납골당 제 1호가 발사되었다.'생명으로 가득 찬 지구'라는 슬로건 하에 진행되고 있는 우주 납골당 프로젝트는 지구에서 죽음을 완전히 걷어내기 위한 정책이다. 매년 탄생 인구와 사망 인구를 참조한 프로젝트의 완공은 2888년으로 예정되어 있다. 엄격한 신체검사와 정신감정을 거쳐 2년동안 납골당에 혼자 머물며 관리하기에 최적화된 사람을 선발한다. / 귀환 후에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어/ 미나미 씨는 귀환 후, 자신에게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다고/ 대부분의 시간을 수영장에서 보내고 있다.




무너진 도시에 빛이 내리면
그것도 사랑의 풍경이 될까

돌아갈 수 없는 것에도
기꺼이 신은 손을 내밀까

스위치를 켠다



2508년, 사이보그와 인간의 마지막 전쟁이 있었다. 유례없는 대규모의 전쟁이었으며 미처 지구를 떠나지 못한 인간들의 기록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사라졌다. 두꺼운 스모그와 대기오염, 그치지 않는 방사능 눈으로 2888년 현재, 지구 접근이 금지된 상태이며, 로봇 청소기 롤라디가 다음 세대를 위해 지구를 청소하고 있다.



무엇이 무엇을 녹일 수 있나
사람을 껴안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네 기도를 알게 되면 너를 이해할 텐데
그런 것은 무섭다

있지 기도란 거 그냥 사라져버리진 않겠지
구체적인 형태로 어딘가로 가고 있는 거겠지
없던 일이 되진 않는 거겠지 분명

네가 애도를 낭비했잖아
마음대로 다 썼잖아

소금은 바다의 기도가 될까
그래서 간을 맞추다 울었나
너무 큰 기도를 알아버려서



2888년의 저녁 식사

매일 창가에 서서 느리게 도는 지구를 본다. 스모그가 뒤덮은 회색 행성을 보며 파파가 운다. 고향 별이다. 저기에 모든 게 있었다.

짠맛이 뭔데요?

벌써 많은 말을 잃어버렸다.

3

지구를 바라보는
그랜마의 그랜마의 그랜마의 사진들.

길게 세 번 짧게 두 번
같은 시간마다 지구에선 불이 켜지고

늙어 죽었습니다.
그렇게 끝나는 이야기는 본 적이 없다.

불빛은 누구를 부르는 걸까.

너무 흩어지면 외로운 거야
팔백 년이 지나도 똑같은 거야.

4
시스터는 엄지와 검지로 원을 만들며 전지적 시점에 대해 생각한다.
지구의 비는 지구의 비. 지구의 눈물을 지구의 눈물. 시스터가 눈을 깜박인다. 길게 세 번 짧게 두 번.

그랜마의 그랜마의 그랜마는 지구에 두고 온 애인을 내내 그리워했어.
그래서 우리가 이 창문을 떠날 수 없는 거야

* 공식적으로 지구 인간은 2500년대에 멸종되었다. 상기 자료는 A808에 거주하던 시스터(2870~2984)의 일기에서 발췌하였다. 지구로 꾸준히 송신했으나 아직까지도 수신 확인 되지 않은 걸로 보아 생존자는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1) 2038년, 외권 우주 조약으로 달 채굴이 금지되었다. 희토류와 백금에 대한 분별없는 채굴로 이미 달은 한 입 베어 문 사과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2) 일부 지구인들은 우주 사업을 중지하는 것만으로도 기후변화의 48퍼센트를 방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나 그것이 모두에게 알려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인류에게는 희망이 필요했다. /희망은 고갈되지 않은 자원이었다. 지구의 상황이 절망적으로 변해갈 수록 사람들은 우주 사업에 열광했다.우주선이 발사될 때마다 지구의 환경은 점점 더 열악해져서/ 마지막 로켓은 47억 인류의 삶과 교환되었다. 인류는 외계 생명체가 지구를 발견하고도 그냥 지나치지 않도록/ 나를 꺼내 도와주세요/ 멀리서 보면 반짝거렸다.
3) "단 한 명만 나갈 수 있는 문이 있고 네가 그 앞에 섰다면 너는 어떡할 거야?"


자동문이 열린다

끝에서 만나

하루 종일 문에서 문으로

악순환
우리가 좋아했던 말

빠지면 널 구할거야
인공호흡 할 거야

멋대로 살리겠다는 말도 나는 좋았고
이야기가 완성되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아주 작은 세포일지도 몰라

그게 너무 따뜻하고
조금 무섭고

알아채지 못할 속도로
반짝이는 밤하늘
쏟아지고 달려오는
전생의 기억



522

먼 옛날 사라진 빛을 지금 보고 있어

여기에 남을 유일한 지문
지구를 향한

놓지 않을게
그런말

기억나?

빛은 여기 없는 사람의 눈물 같다

멀리서 오는 조난 신호를 따라갔지만

아무도 없었어 자동기계였어

멀리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아?

엄마가 천장에 붙여줬던 야광 별은
어딘가로부터의 신호 같아 잠들 수 없었어

빛이 곳곳에 어린다

돌아가야한다


아이들타임 조시현